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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천직, 귀농
매실 채진희의 귀농수기(歸農手記)
2018년 12월 26일 16시 25분 입력


 

 

“아니 무슨 여자가 이러고 기운이 좋아, 사흘 내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 마냥 여리여리하게 생겨 가지고 일하는 거 보믄 장정 다섯 몫은 족히 한다니께, 참말로 사람이 맞는가 싶어!!”

등에 예초기를 메고 산을 오르는 내 등 뒤에서 동네 할머니들께서 바쁜 손길을 멈추시고 격려 차원에서 해주시는 말씀이겠거니 하고 한번 웃음지어 드리고 발걸음을 서둔다.

 

“애들 대학가면 귀농할거니까 그땐 말리지 말아요~” 15년 전쯤,큰아이가 중학생 일 때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귀농을 하고 싶었지만, 도시남자인 남편의 반대가 심했고 아이들도 원치 않았기에 주저앉긴 했지만 귀농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대학만 들어가면...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산림조합원 활동으로 귀농의 꿈을 키워 나갔다.

매스컴에서 연일 터지는 먹거리에 대한 사건사고를 보면서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었다.

평범한 주부로 살면서 아이들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을 바랐던 나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산림조합을 알게 되었고, 조합원으로 가입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귀농을 하면 당연히 유기농을 할 생각으로 화학비료랑 농약 안쓰면 땅도 좋아지고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먹거리가 나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2008년 귀농해서 어느새 농사꾼 이름을 단지 7년차가 되었다.

고향의 풀냄새와 밤길을 거닐 때 올려다 본 달빛, 산에 나무하러 다니고 쑥 캐러 다녔던 그 기억들이 나이가 들수록 생생하게 떠올랐기에 귀농은 나의 천직이라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이해를 해주어 용기를 가지고 귀농을 강행하면서 다소 가파르긴 하지만 풍광이 좋은 임야를 구입하여 길 내고 연못 파고 울타리 치는 일부터 시작을 했다.

농사는 자기와의 싸움이었고 고독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귀농하고 5년 동안 남편은 거의 내려오지 않았지만 남편도 함께하면 한결 일이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늘 있었다.

그래도 지난 해 부터는 남편도 생각이 바뀌어서 주말이면 내려와 도움을 주고 올해 말 퇴직을 하면 내려와 같이 농장을 가꾸기로 한 결정이 나에겐 든든한 힘이 된다.

나는 새로운 작물을 공부하고 그것을 심고 가꾸면서 수확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 시작과는 달리 지금 내 농장에는 고사리, 매실, 블루베리, 여주 등등 다양한 작물들이 보기 좋게 꽃피우고 있다.

산을 예쁘게 가꾸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게 만들고 싶어서 꽃이랑 나무, 국화, 금낭화, 상사화 등도 많이 심었다.

“農者天下之大本” 이라 하지 않았나? 떠나는 농촌이 아니고 돌아오는 농촌으로 가꾸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는 아이들 보기가 어렵다. 논밭으로 들판으로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을 본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자연환경에서의 체험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가마솥에 밥도 지어보고 그 숯으로 고기와 생선도 구워먹고 밤이면 반딧불이도 잡아보고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함께하는 농원이 되었음 하는 바램이다.

주변에 유기농하는 사람들이 없어 혼자 농사를 짓다보니 참으로 어려운 점이 많아 내년에는 고흥, 보성, 순천에 있는 생산자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협업농작을 할 계획이다.

아무쪼록 힘든 세상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가면서 멋진 활약을 펼쳐보길 꿈꿔본다.


고흥뉴스 nsgh@daum.net